
줄거리
<더 킹: 헨리 5세>(2019)는 왕위를 거부하며 방탕하게 살던 왕자 할이 뜻밖에 왕이 되고, 전쟁을 피하려던 신념이 점차 무너져 프랑스 원정을 감행한 뒤 승리의 대가로 고립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티모시 샬라메가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할은 폭정과 전쟁을 일삼는 아버지 헨리 4세를 혐오해 궁정을 떠나 폴스타프와 어울리며 지냅니다. 아버지는 후계자로 동생 토머스를 점찍지만, 반란을 진압하러 간 토머스가 전사하면서 할은 왕위를 이을 처지에 놓입니다. 그는 퍼시 가문의 핫스퍼와 결투를 벌여 무의미한 유혈을 막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헨리 5세로 즉위합니다.
그는 평화를 지향하며 대법관 윌리엄 개스코인을 중용하고 전쟁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황태자가 모욕적인 선물로 도발하고, 자신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프랑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마음이 바뀝니다. 그는 음모에 가담한 귀족들을 처형하고, 폴스타프를 군사 자문으로 불러 프랑스 원정에 나섭니다.
영국군은 병력이 크게 열세인 상태로 아쟁쿠르에 이릅니다. 폴스타프의 조언으로 좁고 진창인 지형을 전장으로 택하고, 장궁병을 앞세워 갑옷의 무게에 지친 프랑스 기사들을 학살하다시피 격파합니다. 폴스타프는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할은 황태자와 직접 맞붙어 승리합니다.
그는 프랑스 왕의 딸 카트린과 정략결혼합니다. 카트린은 그에게 이 전쟁이 조작된 명분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그가 조언자들의 손에 놀아났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영화는 승리한 왕이 지키려던 신념과 결국 자신이 닮아 버린 아버지의 모습 사이에서 흔들리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역사적 배경
영화는 14세기 말~15세기 초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 문제와 백년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와 『헨리 5세』를 크게 참고해 만든 허구적 각색입니다. 1399년 헨리 4세는 사촌인 리처드 2세를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정통성 문제 때문에 재위 내내 반란이 이어졌고, 웨일스의 글린두르 반란과 퍼시 가문의 반란이 대표적입니다. 영화의 불안한 궁정 분위기는 이런 상황을 반영합니다.
헨리 5세는 1413년 즉위한 뒤 1415년 프랑스 원정에 나섰습니다. 당시 잉글랜드는 에드워드 3세 이래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샤를 6세의 정신 질환과 귀족 파벌 싸움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1415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서 영국군은 수적으로 크게 불리했으나, 비로 질척해진 좁은 지형과 장궁병의 활약으로 프랑스 기사단을 격파했습니다. 이후 헨리는 1420년 트루아 조약으로 프랑스 왕위 계승자 지위와 카트린 드 발루아와의 결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1422년 이질로 추정되는 병으로 서른다섯 살에 사망했습니다.
영화에는 허구가 많습니다. 폴스타프는 셰익스피어가 만든 인물이어서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고, 핫스퍼는 1403년 슈루즈버리 전투에서 결투가 아니라 전투 중 사망했습니다. 프랑스 황태자는 아쟁쿠르에 참전하지 않았고, 헨리와 결투를 벌이지도 않았습니다. 실제로는 1415년 사우샘프턴 음모가 있었지만 프랑스가 직접 암살을 사주했다는 영화의 설정은 각색입니다. 또 실제 헨리는 영화보다 훨씬 일찍부터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앞세운 원정을 준비한 군주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영화는 사건의 연대기보다 권력과 전쟁의 도덕성을 다루는 해석적 작품으로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총평
<더 킹: 헨리 5세>는 셰익스피어식 영웅담을 뒤집어 전쟁이 권력자를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를 차갑게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승리의 환호보다 그 뒤의 공허함을 부각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연출은 데이비드 미쇼, 각본은 미쇼와 조엘 에저턴이 맡았습니다.
강점은 먼저 연출과 미장센입니다. 어둡고 거친 질감의 화면, 진창과 갑옷의 무게를 체감하게 하는 아쟁쿠르 전투 장면은 중세 전쟁을 낭만화하지 않고 그 혼란과 잔혹함을 전합니다. 티모시 샬라메는 책임을 피하던 청년이 무거운 왕관 아래 차가워지는 변화를 절제된 연기로 보여 줍니다. 조엘 에저턴의 폴스타프도 냉소와 연민을 오가며 영화의 도덕적 중심을 잡아 줍니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프랑스 황태자는 과장된 개성으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인물로 기억에 남습니다.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앞서 본 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른 설정이 많아, 역사 영화로서의 정확성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인물 관계와 동기 변화가 다소 빠르게 정리되어 설득력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고, 후반부 카트린과의 장면은 주제를 직접 말해 버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영화가 말하려는 반전쟁 메시지가 분명한 만큼, 해석의 여지가 좁아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정통 사극의 웅장함이나 사실 재현보다 권력의 허상과 폭력의 반복을 되새기는 어두운 드라마를 선호하는 분께 추천할 만합니다. 셰익스피어 원작과 함께 비교하며 보면 각색의 의도가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